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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융경제-전남경찰청 채수창 경비교통과장] 전남경찰청 경비교통과장으로 부임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지방경찰청 교통과장이 '면허행정처분 이의심사위원장'이라는 사실이었다. 

면허행정처분 이의심사는 음주운전 등 단속에 걸려 면허가 취소된 사람을 대상으로 생계형 운전자인지를 심사해 취소된 면허를 구제하여 주는 제도다. 

경찰은 단속하고 규제하는 일이 업무의 대부분이었는데 운전면허가 취소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면허취소를 구제해 주는 아주 훌륭한 일이 있다는 것을 새삼 알았고 그 권한을 지방경찰청 경비교통과장인 바로 내가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그 동안 이의심사는 전국 모든 지방경찰청에서 서면심사로 진행되었었다. 이의신청자 주소지 경찰서에서 신청자의 교통법규 위반 전력, 가족관계, 재산상태 등을 조사해 지방경찰청으로 보내면 지방경찰청에서는 교통관련 담당 공무원과 민간위원 등 심의위원이 모여 경찰서에서 보내 온 서류를 토대로 생계형 운전 인지 여부를 심사, 구제여부를 결정했던 것이다. 

생계형이란 말은 운전으로 먹고 사는 딱한 사정을 참작하라는 것인데 어떻게 서류심사만으로 그 딱한 사정을 알 수 있단 말인가? 눈물 젖은 딱한 사정이 어떻게 서류에, 그것도 단속을 주로 담당하는 경찰서에서 작성하여 보낸 서류에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대상자를 직접 불러 표정도 보고 이야기도 직접 들어 보아야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법원의 재판도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는 직권주의 방식에서 재판장에서 원고와 피고가 치열하게 주장하고 판사는 양측의 주장을 듣고 판단하는 공판중심주의로 바뀐지 오래됐다.

최근에는 공판중심주의에서 더 나아가, 재판과정에 국민을 배심원으로 참여케하는 국민참여 재판제도를 채택하는 판에 교통경찰은 아직도 서면 직권주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서면심사 직권주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을까? 추측컨대 음주운전자에 대한 단속에만 치중하고 운전면허 구제가 그 운전자에게 얼마나 절실하고 절박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음주운전한 사실은 처벌받아 마땅하다. 음주운전이 얼마나 위험하고 특히 아무런 관계없는 타인까지 위험하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처벌에도 정상참작이란 것이 있어야 하고 구제라는 숨통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운전밖에 없어 겨우 운전을 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운전면허는 목숨과도 같은 법이다. 

그 목숨과도 같은 운전면허 구제여부 심사를 서류로만 했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너무 무성의 한 것이었고 공직자의 국민 섬기는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됐다. 비록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더 걸려 불편하다 할지라도 직접 불러 대면하는 것이 맞는 방식이라고 확신이 들었다. 

전남지역에서 2012년부터 2013년 3월 현재까지 면허가 취소된 사람은 총 7423명이고 그 중 음주운전이 관련되어 면허가 취소된 사람은 6369명이다. 

같은 기간 이의신청한 총인원은 184명이다. 이의신청한 사람들의 직업은 운수업 49명(27%), 회사원 40명(22%), 자영업 41명(22%), 농수산업 21명(11.4%), 학생 3명(1.6%)이다. 

통계에서 보듯 이의를 신청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운전관련 종사자이거나 생계를 위해 운전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면주의 방식으로 어려운 서민들의 딱한 사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구제되는 비율이 그토록 낮았던 것이다.

내가 경비교통과장으로 부임한 직후인 2013년초부터 직접 불러 딱한 사정을 들어 보고 판단하는 대면심사로 바꾸었다. 그 결과는 예상했던 이상이었다. 

2011년 한해 구제된 비율이 7.4%, 2012년에는 11.5%이었는데 대면심사 방식으로 바꾸고 난 이후 구제비율은 27%로 상승했다. 

지난 3월 심사에서는 대상자의 33%나 구제됐다. 대면심사를 통해 생계형 여부를 제대로 판정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앞으로는 심사받으러 멀리 지방경찰청까지 오는 불편과 하루 일당을 포기해야 하는 어려운 경제형편을 감안해 심의위원회를 각 지역으로 직접 찾아가 개최하는 찾아가는 교통행정을 실시할 계획이다. 

대면심사 및 찾아가는 행정이 다른 지방경찰청은 물론, 행정전반으로 확산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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