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경제 박미지 기자] 작곡가 함현상은 일본군 위안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귀향’의 음악감독을 맡았을 때, 어떻게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를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심했다. 음악적 스킬을 고민하는 것조차 “너무 죄스러웠다”는 그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직접 다녀온 후에야 전쟁 피해자들의 심정을 헤아린 ‘귀향’의 OST를 완성할 수 있었다.

우리의 민요는 특별한 것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닌,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서 시작한다고 말하는 그는 현재 국악방송에서 ‘꿈꾸는 아리랑’을 진행하며 청취자들과 소통하고 있는 라디오 DJ이기도 하다.

또한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에서 합창대회를 준비했던 자신과 제자들의 이야기를 영화화 한 ‘두레소리’에서 ‘작곡 선생님’ 역할을 맡아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함현상의 음악에는 전통악기의 소리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의 삶과 정서까지 녹아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경험하고, 그 경험과 감정을 바탕으로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그를 만나 작곡가로서의 삶과 한국의 전통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봤다.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됐나요.

- 어릴 때 우연히 갔던 뷔페에서 남자 피아니스트가 멋있게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고서, 그 모습에 완전히 매료됐었어요. 그 이후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루에 몇 시간씩 피아노를 쳤었죠. 그 때는 막연히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지 국악은 염두에 두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국악공연을 보러 가서 국악을 접하게 됐고 우리 음악으로 작품을 만들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그 때 나이가 중2였어요.

어린 나이에 국악을 좋아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국악에 관심 없는 이유는 국악을 접할 기회 자체가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국악을 들어볼 기회가 있다면 충분히 빠질만한 매력이 있어요. 하지만 대체로 그런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죠. 저는 국악을 들을 기회가 있었던 것이고요.

어린이음악회 ‘아빠사우루스’에 참여한 이유도 어린이들에게 국악을 접할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나요?

- 그렇죠. ‘아빠사우루스’는 국립음악단에서 국악을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들려주기 위해 제작된 작품이에요. 저도 그 공연을 통해 아이들에게 국악을 재밌는 놀이처럼 들려줘서 성인이 돼서도 우리음악이나 우리악기를 봤을 때 전혀 어색함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했죠.

작곡가 함현상(박미지 기자/pmj@)

공연음악뿐만 아니라 영화음악도 작곡하고 있는데, 영화음악만의 특성은 무엇인가요.

-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건 영상과 메시지라고 생각해요. 음악이 조금이라도 과해지면 사람들이 영상보다는 음악에 신경을 쓰게 되고, 그러면 감독이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영화가 진행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영화 음악은 너무 힘을 주거나 빼면 안돼요.

조정래 감독의 영화 ‘귀향’의 음악 감독으로 작업할 때는 어떠셨나요.

- 영화 ‘귀향’의 시나리오는 조정래 감독이 오래전부터 써놨던 작품이에요. 저도 5-6년 전부터 작업 의뢰를 받았었지만, 어떤 방식으로 음악 작업을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그 고통스러운 피해를 당했을 때 나이가 고작 10대였잖아요. ‘그 때 그 분들의 마음을 감히 내가 담아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직접 가보기도 했어요. 위안부 할머니들처럼 유태인들도 나치에게 폭력과 억압을 당했었잖아요. 그곳에서 느낀 정서를 음악으로 담아내야겠다 싶었죠.

그런데 막상 다녀와서 영상을 보니까 한마디도 못 쓰겠더라고요. 평소에 저는 영화 음악을 작업할 때 ‘여기서 이런 코드를 쓰고, 이런 리듬을 쓰면 분위기가 상승이 되면서 어떤 감정이 느껴질거야’라는 식으로 계산을 해서 작업을 하는데, 그 영상에 음악적 기술을 고민한다는 자체가 너무 죄스러워서 아주 힘겹게 작업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대중매체에서 국악이 접목된다면 해외에도 우리의 음악을 좀 더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지 않을까요.

- 그 역할은 우리나라의 비보이들이 굉장히 잘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보이들 중에 한국적인 소재의 음악을 찾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 친구들이 세계무대에 올라가 짧게라도 한국적인 장단과 한국적인 춤사위를 섞은 비보잉을 보여주면 전 세계 어떤 사람들도 따라할 수 없는 ‘한국의 비보잉 음악’이 되고, 그게 하나의 콘텐츠가 된다고 생각해요.

작곡가 함현상(박미지 기자/pmj@)

국악이 한국의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 제가 국악을 처음 공부했을 때는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국악을 들어야하고, 한국 음악을 안 들으면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그건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었어요.

누군가 김치 대신 스파게티를 먹는다고 해서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 한국을 살아가는 젊은이가 ‘오늘은 아이유 음악이 듣고 싶은데, 내일은 송소희가 부르는 민요도 좋을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게끔 시장의 다양성이 존재해야 해요. 그 역할은 일정 부분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국악이 젊은이들에게 어색해 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다가갈 기회가 많아져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스파게티를 먹다가 김치를 먹었을 때 어색하지 않은 건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먹어왔기 때문이잖아요. 마찬가지로, 국악도 특별한 음악이 아니라 생활 속의 음악으로, 강제성 없이 아이들에게 인식되는 과정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최근에는 힙합이나 록 음악에 국악적 요소를 가미하는 시도도 꽤 있어요.

- 그런 시도를 하는 아티스트들은 사고가 굉장히 열려있다고 봐요. 그들이 국악을 사용하고 싶다면 더 멋지게 사용하게끔 도와주고 싶은 생각도 들고요.

특히 힙합은 민요적 성격이 강한 장르에요. 우리 조상들은 민요를 통해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이나 한, 억울함 같은 것들을 표현하고 부조리한 사회를 조롱하곤 했잖아요.

오늘 날의 힙합 가사들도 마찬가지에요. 민요 가사와 닮은 점이 많죠. 미운 사람을 ‘디스’하기도 하고, 자신이 살아가면서 겪는 것들을 가감 없이 솔직히 털어놓기도 하고, 현실을 비판하기도 하잖아요. 거기에다 한국적 선율까지 섞어낸다면 더욱 더 민요에 가까워지는 것 아닐까요? 백년 후 그 힙합음악이 ‘우리의 민요’로 교과서에 실릴 수도 있어요. 그래서 현대 음악과 국악의 협업이 계속해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고요.

힙합이나 록 음악에는 폭력적 성향이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음악에 국악을 대입시킨다면 우리 음악의 고유성을 훼손하는게 아닐까 하는 우려는 없나요.

- 그런 고민들은 항상 있어요. 또한, 전통이라는 것은 절대 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지금은 우리의 것을 지키고 고수하려는 사람도 있고, 완전히 진보적으로 바뀌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가운데 그 절충안 또한 계속 나오고 있어요. 그 절충안이 대중과 만나면 그것이 시간이 흐르면 또 전통이 될 수도 있죠.

저 또한 국악이 바뀌면 안 된다고 생각한 적도 있고, 무조건 바뀌어야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지금은 그 선택을 대중들에게 맡기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가고자 합니다.

작곡가 함현상(박미지 기자/pmj@)

현재 국악방송도 진행 하고 있어요.

- 오후 4시부터 5시 40분까지 국악방송 ‘꿈꾸는 아리랑’을 매일 진행하고 있어요. ‘아리랑’이라는 것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우리 삶의 이야기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국악도 들려주면서, 청취자들과 편안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우리 사회의 평범한 이웃 분들을 모셔서 소통하고, 그 분들의 삶에서 우리의 보편성을 찾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아리랑’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 ‘함현상의 음악에서는 인간적인 냄새가 난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거 말고는 없네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금융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