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경제 박미지 기자] 조형예술가 홍정욱은 작가이기 전에, ‘본질’의 가치가 흐려지고 있는 우리 사회를 염려하는 한 사람이다. 홍정욱의 ‘기본을 지키며 나아가는 삶’에 대한 철학은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원칙을 지키며 만들어 낸 완벽한 미감이 느껴지는 그의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홍정욱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 대학원 회화과를 거쳐 영국 런던대학교 Slade 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후, 현재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김종영미술관 올해의 젊은조각가, Guasch Coranty International Painting Prize, New Contemporaries 등 국내외 다수의 미술 대전에 선정돼 작품을 인정받았다.

최근 개인전 ‘INFILL'을 개최하며 기본과 본질에 대한 관심을 공간을 아우르는 입체적 회화로 진화시킨 홍정욱을 만나 그의 작품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이번에 개최한 개인전 ‘INFILL’은 어떤 전시인가요.

- 회화를 전공하고 여러 작업을 거치면서 저는 그림이라는 것이 ‘꼭 벽에 걸려야 하는가’, 혹은 ‘꼭 평면성을 유지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왔어요.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평면에 걸리는 것뿐만 아니라 모퉁이나 코너 등에 작품을 위치해두거나, 무심하게 바닥에 툭 던져놓듯 놔두기도 했어요. 덕분에 여러 방향에서 입체적으로 작품을 느낄 수 있죠.

컬러도 앞면뿐만 아니라 뒷면도 칠해서 자연스럽게 작품 주변으로 색이 번져 나오게끔 의도 했어요. 공간에서 색이 베어 나온듯한 느낌을 전달하고자 했죠.

조형예술가 홍정욱(박미지 기자/pmj@)

몇몇 작품들은 순수 예술 작품으로서만 존재할 뿐만 아니라, 실용적으로도 활용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전구를 사용한 작품은 조명으로도 사용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순수회화에서 실용적인 역할을 하는 건 주로 작품과 작품을 결합해주는 오브제 역할이 대부분이에요. 이번 전시에서 저는 그러한 오브제들을 단순히 결합의 요소에서만 그치지 않고, 거기에 또 다른 부착물을 붙이거나 커버를 씌움으로서 색다른 조합을 이루고자 했어요.

최근작들은 과거에 비해서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 처음 개인전을 할 때 선보인 작품들은 흑백으로만 작업했었어요. 저의 메시지를 작품으로 전달하는데 컬러는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오히려 컬러가 방해가 된다고 여길 때도 있었죠. 그런데 컬러가 배제된 작업을 3~4년 하다보니까 문득 ‘내가 컬러를 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쓰는 게 아닐까’싶더라고요.

제가 작품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있어서 컬러가 ‘방해요소’로 작용했을지라도 그 방해요소마저 작품으로 가지고 들어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의 쳇바퀴 내에서만 계속 작업을 하는 건 재미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최근에는 컬러에 대한 시도를 많이 해요. 컬러가 가지고 있는 힘은 굉장하거든요.

조형예술가 홍정욱(박미지 기자/pmj@)

작업을 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건 무엇인가요.

- 본질을 중시 여겨요. 기본적인 것, 혹은 하찮거나 흔한 것들이 결합했을 때 전해지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살아가고 있잖아요. 어떤 게 중요한지 모르고, 기본의 필요성을 잊고. 원칙을 지키기 보다는 속도나 효율에만 지나치게 몰입하는 경우들도 많고요.

저는 사회적 현상이든 예술작품이든, 무엇이든지 본질이 확고하게 구축이 돼야 그 다음 단계의 응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표면상으로 보이는 것만 가지고 응용을 하면, 바로 신기해보일수는 있어요. 변형된 틀이 갑자기 나타나면 굉장히 신선해 보이죠.

하지만 빨리 질리기도 해요. 우리가 소위 ‘구닥다리’라고 표현하는 것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들이잖아요. 오랜 기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것들을 지키고 싶어요.

사실 작업할 때 몇 가지 단계를 생략하고 빠르게 하고 싶을 때도 있죠. 하지만 빨리 하려고 하면 실수하거나 망쳐서 오히려 더 오래 걸리더라고요. 제가 원칙을 지킨 작품을 선보이는 게 관람객에 대한 예의이자 최소한의 도리이지 않을까요.

조형예술가 홍정욱(박미지 기자/pmj@)

미술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들이 순수회화를 접할 때, 좀 더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팁이 있을까요.

- 작품을 많이 보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작가의 의도를 알려고 하기 전에, 작품을 오래 감상하며 자기만의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해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감상을 떠올리기도 전에, 작품에 대한 ‘답’을 먼저 얻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관객이 작가의 작품을 오독해도 괜찮나요.

- 저는 괜찮아요. 관객이 작가의 의도와는 다른 감상을 했다고 해도, 그 관객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면 안되죠. 의도한 것을 잘 이해해주는 관객들의 숫자를 늘리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처음에 의도한 아이디어는 제작기간 동안만 유효하지, 그걸 감상자들한테 주입할 필요는 없어요. 작품의 ‘정답’만 찾으려고 하면 그 감상은 자신의 것이 아닌 남의 것을 가져온 것 밖에 안되니까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 ‘좋은 어른’이요. 책임을 져야할 때는 지고, 목소리를 낼 때는 낼 줄 아는 어른. 지켜야할 것은 지키며 융통성은 발휘할 줄 아는 사람이죠. ‘좋은 작가’는 일단 좋은 어른이 된 다음의 일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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