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중소기업 품목에 물량공세로 들어오고 있다. 시장 파이가 커지는 효과는 있겠지만 결국 대기업 독식 구도로 굳혀질 것이다.”

제습기 시장을 취재하던 중 한 중견기업 이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대기업이 시장에 뛰어들면 대규모 자본을 투입한 마케팅 효과로 소비자들의 ‘제습기’ 인식은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장 파이는 커질 수 있지만 자칫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양강구도로 바뀌어 기존 강자였던 자신들은 밀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강했다. 중소기업 ‘기술력’이 앞서도 대기업의 막대한 마케팅 비용 앞에는 이길 체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제습기, 공기청정기, 침구청소기 등 중소기업 텃밭으로 알려졌던 분야의 시장이 커지면서 대기업이 속속 뛰어들고 있다. 특히 제습기 시장은 지난해 장마가 길어지면서 40만대 규모가 140만대로 3배 이상 껑충 뛰었다. 올해는 250만대, 8000억원 시장을 예고하고 있다. 시장이 커지자 대기업들의 공세가 강화됐다. 삼성전자는 OEM생산업체인 위닉스가 요구 물량을 전부 소화하지 못하자 중국 가전 업체인 ‘미디어’ 등의 제습기를 OEM으로 들여와 삼성의 이름을 달고 팔기 시작했다.

기업은 자본주의 셈법에 따라 자기 살길을 찾기 마련이다. 8조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는 글로벌 기업이라도 기업의 존재 목적이 ‘이윤 추구’인 이상 8000억원 규모의 작은 시장에 욕심을 낼 수는 있다. 중기업종이 아닌 이상 이를 막을 명분은 없다.

중요한 것은 건전한 경쟁과 생태계 조성이다. 좋은 제품과 프리미엄 기능으로 신제품을 내놓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요 유통 채널을 장악해 대형 유통업체 진열대를 대기업 제품으로 채우고,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 제품을 판매점 진열대 구석으로 몰아내는 행태를 제발 자제해 달라는 것이 중소 가전업계의 하소연이다.

2012년 국내 기업 중 0.9%에 불과한 대기업은 전체 매출액의 절반이 넘는 65%를 차지했다. 어디 제습기 시장뿐이랴. 중소기업들의 한숨이 마를 날은 과연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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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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