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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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융경제신문=김선재 기자 |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이하 ELS) 대규모 손실 사태와 관련해 일부 은행이 투자자의 중도상환을 막고, 대출을 유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콩H지수 ELS 판매 은행들이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의 분쟁조정기준안을 수용하고 자율배상을 결정한 가운데, 투자자들은 은행의 설명의무 위반 등 위법한 판매 행위와 금감원의 분쟁조정기준안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원금 전액 및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홍콩H지수 ELS 피해자 모임은 29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 앞에서 ‘제4차 홍콩H지수 ELS 피해자 대국민 금융사기 계약 원천 무효 집회’를 열었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전국 각지에서 모임 홍콩H지수 ELS 투자자들은 제대로 된 설명과 안내 없이 가입시키기에만 급급하고, 정작 사태가 터졌을 때는 ‘나 몰라라’ 하는 은행권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A은행에서 상품에 가입했다는 투자자는 “배상과 관련해서 아직 은행으로부터 온 것은 없다. 오히려 제가 질문을 하면 ‘전혀 모른다. 대충 조금은 돌려드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식으로 대응한다. 가입 전에는 ‘사모님, 사모님’하더니 가입 후에는 그냥 ‘아줌마’다”며 “원금 손실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내가 든 상품 형태도 얼마 전에 알았다. 원금 손실이 있는 줄 알았다면 이자 3%, 300만원 보자고 1억원을 날리겠나”고 말했다.

그는 “은행에 예금하러 갔지, 파생결합이니 뭐니, 이런 거면 증권사에 가서 주식을 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면서 “원금 100%에 피해보상까지 받아야 한다. (이번 사태는) 있을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사기공화국”이라고 일갈했다.

투자자들은 홍콩H지수 하락에 중도상환하려고 했지만, 은행에서 이를 막았다고 주장했다. 다시 오를 수도 있는데, 지금 빼면 손해라는 이유를 들면서다. B은행에서 상품에 가입했다는 한 투자자는 “지수가 떨어지면서 손실 이슈가 터지면서 중간에 돈을 빼려고 했는데, 은행 직원이 지금 빼면 손해라면서 막았다”며 “나중에 오를 수도 있는데, 지금 빼면 손해라면서 기다려보라고 했다. 그때 뺏으면 지금처럼 크게 손실을 보지 않았을 것”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이어 “그전에는 하면 안 된다고 그랬는데, 매스컴에서 이슈가 되자 중도상환하라고 문자가 왔다”면서 “너무 잘못된 것이 사실이지 않나. 완전히 속인 것이다. 우리는 제도권 금융인 은행 가서 강도당한 기분이다.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다른 투자자는 홍콩H지수 ELS 손실 이슈가 터지자 은행에 가서 중도상환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대출을 안내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손실을 덜 보기 위해서 중도상환하려고 했는데, ‘다음에 타면 이자도 더 받는다’며 막았다”면서 “빚이 있어서 남은 돈으로 빚을 갚으려고 한다고 했더니 대출을 안내했다. 이자율은 8~9%였다”고 말했다.

은행 직원들이 투자자들의 중도상환을 막은 것은 중도상환할 경우 해당 시점의 수익률이 핵심성과지표(KPI)에 반영돼 점수가 깎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쿠폰 이자 5%를 제공하는 주가연계신탁(이하 ELT)를 판매했는데, 조기상환 시점에서 기초지수가 30% 하락해 투자자가 이를 중도상환했다면 –30%가, 그렇지 않으면 3%가 KPI에 반영되는 방식이다.

금감원에서도 KPI에서 ELT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이를 환매할 경우 직원이 떠안아야하는 부담이 컸다는 점이 손실 규모를 키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해당 투자자는 “ELS는 손실률이 52.88%가 나왔다. 반토막 넘게 까먹고, 이자는 이자대로 내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며 “은행은 절차대로 했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고 한다. 그때 왜 중도상환을 못하게 했냐고 따지니 그때는 그랬다고 한다. 너무 억울하다”고 한탄했다.

사진=김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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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016년 홍콩H지수 폭락 사태를 언급하며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2015년 5월 1만4800선까지 올랐던 홍콩H지수는 불과 6개월 사이 7500선으로 하락했다. 다만, 2018년 지수가 1만2000선을 회복하면서 ELS 상품 대부분이 원금 손실 없이 상환됐다.

C은행 상품 투자자는 “중도상환 하려고 전화를 했더니 홍콩H지수는 10년 전, 5년 전에도 다 돌아왔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라”며 “녹음했던 것을 들려줬더니,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미안하다고 하더라. 우리나라 은행이라는 데가 그렇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금감원의 분쟁조정기준안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배상비율이 터무니 없다는 것이다. 지난 11일 금감원은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하면서 실제 배상비율 대부분이 20~60% 범위에 있을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D은행에서 홍콩H지수 ELS에 가입한 투자자는 “나이, 투자 횟수, 금액 등 이것저것 차감하면 말도 안 되는 비율이 된다. 제 경우 계산을 해보니 10% 정도 주면 잘 주는 것이더라”면서 “손실이 47% 났는데, 손해가 나도 후취 수수료를 떼더라. 그것도 몰랐다. 무조건 원금배상까지 갈 것”이라고 말했다.

길성주 홍콩H지수 ELS 피해자 모임 대표는 “은행 측은 자신들의 범죄를 인정하지 않았고, 금융당국도 국민과 피해자를 외면하는 배상안을 발표했다. (금감원장은) 지금까지도 은행 편에서 만든, 피해자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배상기준안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며 “금감원장은 은행 감싸기에 급급하고, 금융현안을 논의한다는 핑계로 은행장과 회동이나 하며 만찬이나 즐기고 배상안을 내놓는 것은 오히려 우리를 두 번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한편, 홍콩H지수 ELS 판매 은행들은 모두 자율배상을 결정했지만, 실제 배상까지는 지난한 싸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각 은행들은 자율배상을 결정하면서 금융상품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지식, 소비자보호 정책 및 법률 전문가 등이 포함된 자율배상 관련 위원회 혹은 협의체를 구성, 신속하게 배상절차에 들어갈 방침이다.

반면,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판매 은행들의 불완전판매가 확인된 만큼 계약 원천 무효를 주장하며 원금과 손실액 전액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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