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이 있다. 과거의 습성은 버리고 새로운 형식과 동시에 내실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3년 만에 재개된 한국전력의 200만호 원격검침인프라(AMI) 사업을 두고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사업 주체나 참여 기업이나 `새 술`보다는 `새 부대`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눈치다. 지난 3년간 사업이 중단돼 하루빨리 실적을 달성하겠다는 의지에서다.

한전은 국민(수용가)이 납부한 전력산업기반기금 1조7000억원을 투입해 2020년까지 전국 2194만가구에 AMI를 구축할 계획이다. AMI로 전기사용량에 따른 소비패턴과 과금, 전력 수요반응(DR) 등의 스마트그리드 기능을 실시간 구현할 수 있다.

사업 첫 해인 2010년부터 최근까지 수차례 핵심부품 간 상호운용성 미비와 시험평가(BMT)장비 조작 논란으로 중단됐다. 감사원은 입찰업무 부당 처리로 한전 직원의 징계처분과 BMT장비·시험 프로그램 등을 보완하는 대책 마련을 통보했다. 이에 한전은 부품 간 상호운용성 검증과 BMT 장비 개선, 다수를 선정하는 사업공고 등 지금까지의 문제점을 보완해 올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논란이 됐던 BMT의 제작업체와 운영주체는 그대로다. 사업 책임주체도 여전히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다. 두 차례 감사원 감사를 받았지만 한전 전력연구원과 전기연구원의 역할과 책임은 달라진 게 없다. 문제가 발생하면 또다시 책임공방이 예상된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관리기관이라는 이유로 사업계획에 따른 결과만 주시할 뿐 지금의 과정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논란이 됐던 모든 문제의 공통점은 관계에서 비롯됐다. 기업과 한전 그리고 관련 기관 간 부당업무 사실이 드러난 만큼 책임주체를 명확히 해야 한다. 또 무분별한 기업들의 참여를 제한하기 위해 지금의 입찰방식을 신뢰품목으로 전환해 기업의 도덕성과 재무건전성, 기술력 등의 객관적인 검증도 필요하다. 여기에 이달 실시하는 BMT도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하는 방안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 AMI는 우리 후대들이 사용할 인프라다. 과거의 경험과 방식을 탈피해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막중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

박태준기자 | gaiu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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