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도화지를 이제 막 채워나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완성된 아름다움 보다는 완성되가는 과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배우 이용범.

만연 배우생활을 했을 것 같던 그는 사실 연기 경력이 연극 ‘액션스타 이성용’ 한 편인 늦깎이 배우다. 올해 29살인 그는 서경대학교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했으나 어느 날 한 편의 공연 관람으로 연기에 대한 결의를 다지고 대학 중퇴 후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연기에 대한 열정과 떨림 그리고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그는 현재 대학로에서 롱런하고 있는 연극 ‘옥탑방 고양이’에서 남자주인공 이경민 역을 맡아 4개월 째 공연을 올리고 있다. 종횡무진 연기라는 꿈을 펼치고 있는 배우 이용범을 무대 위에서 만났다.

 

이번 연극에서 맡은 이경민 역에 대해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 이경민은 건축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한 목표의식을 갖고 부모님 도움없이 홀로 옥탑방에서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 과정에서 여자주인공 남정은을 만나 사랑을 이루고 각자 꿈과 관련해 겪게 되는 장애물을 함께 풀어나가게 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성실하고 남자답고 배려심 있는, 여자문제에 있어서는 수줍음이 많고 서툰 캐릭터입니다.

 

실제 본인과 이경민은 어떤 차이가 있으신가요?

이경민은 재력이 있고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은 완벽한 인물인데 저는 그렇지 않아요. 저는 돈도 인기도 그렇게까지 없기 때문에 무대에서 이경민으로 연기할 때 행복합니다. 제가 갖지 못한것들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어서 연기가 더 재밌고 좋아요.

 

연극배우의 길을 걷게된 계기가 있다면요.

- 식상할 수 있는데 전역 후에 한 공연을 보게 됐어요. 그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막연히 멋져보이고 열정이 느껴지더라고요. 신선하고 충격적이었어요. 한 번 도전해보자는 결심을 했고 지금까지 그 선택에 후회없이 올바르게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나이 때문에 주변에서 연기의 꿈을 말린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 특히 부모님이 처음에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말만 꺼내면 계속 대화를 자르셔서 편지를 세네장 써서 드리기도 하고 계속 설득한 후에 동의를 받았어요. 지금은 공연을 보러 오기도 하시고 응원해주시죠.

 

이번 작품은 오디션을 통해 맡게 되셨나요?

‘옥탑방 고양이’ 공연이 두 번째 공연인데요. 첫 작품을 공연할 때 주변에서 이런 공고가 나왔으니 한 번 지원해보라고 알려주셨어요. 솔직히 기대를 안하고 지원해 오디션을 봤는데 좋게 봐주신 덕에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배우 이용범 <사진=이은현 기자/hyun@>

오디션 경쟁률이 높았을텐데 본인의 어떤 점이 캐스팅 요소가 됐다고 생각하세요? 

- 오디션을 본 당시에는 안될 줄 알았어요. 칭찬도 별로 없었고 지적을 계속 해주셔서요. 오디션을 준비할 때 ‘내가 가진 열정이라도 많이 보여야겠다’고 생각해서 이것 저것 준비를 많이 해갔고 그런 모습이 어필이 된 것 같아요. 내가 잘나서 때문이라기보단 연출님께서도 순수함을 눈여겨 봐주시지 않았나 싶어요. 경험도 많이 없었으니까요.

 

라이브로 진행되는 연극무대의 특성상 돌발상황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 공연 중에 어깨뼈가 탈골된 적이 있어요. 탈골을 경험해본 사람은 어떻게 대처할지 알았겠지만 저는 그런 경우가 처음이었고 또 공연중이어서 굉장히 당황했죠. 너무 아파서 ‘이건 참을 게 아니라 공연을 중단해야겠다, 못하겠다’하는 찰나에 혹시 몰라서 껴봤는데 딱 껴지더라고요. 아픔도 조금씩 덜해지면서 다행히 공연을 마무리 했던 기억이 있어요. 아찔한 기억이죠.

 

파트너분께서는 알고 계셨다고 하나요?

- 그 장면이 남정은역의 양은진씨를 안고 이동하는 장면이었어요. 말은 못했지만 제 표정을 보고 팔이 아픈 것 같다고 느끼셨는지 저를 뿌리치고 걸어가는 걸로 바꿔서 연기하시더라고요. 공연 후에 팔이 빠진지는 몰랐지만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느껴 그렇게 대처하셨다고 해서 고마웠고 센스에 놀랐죠.

 

탐나는 배역이나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로는 어떤 게 있으신가요.

- 제가 연기 경력이 거의 없어서 못해본 배역이 많아요. 그래서 하고싶은 캐릭터도 정말 많고요. 찌질한 역할이나 멀티도 정말 하고 싶고 강한 트라우마를 가진 무게감 있는 인물 등 욕심나는 역할은 꼽을 수 없을만큼 많아요. 지금은 그런 것들이 정말 기대되고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게될 지에 대한 이 기대감도 배우라는 직업이 가질 수 있는 특수한 장점이라고 생각해 항상 즐겁게 임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배우로는 누가 있으신가요?

- 송강호 선배님이요. 또 하정우 선배님과 여자로는 전도연 선배님을 존경합니다. 그 분들은 배우로 치면 마치 다른 경지에 다다른 듯한 느낌이 있어요. 그럴 순 없겠지만 몸 속으로 들어가서 한 세달 정도 어떤 감각과 생각으로 살고 연기하는지 느껴보고 싶어요.

 

평소에 엉뚱하단 소리 많이 들으실 것 같아요.

- 맞아요. 제 별명이 허당이에요. 개그욕심은 많은데 안웃긴 사람이죠(웃음). 그래서 다양한 배역을 잘 소화할 수 있도록 이 부분도 많이 보완해가려고 해요.

‘옥탑방 고양이’ 출연 배우 이용범(좌)과 양은진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은현 기자/hyun@>

목소리가 좋으신데 발성을 살려서 뮤지컬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도 해보셨나요.

- 학창시절에는 목소리가 스트레스였어요. 친구들이랑 떠들어도 저 혼자 걸리고 소리가 많이 울리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이 부분이 장점이 돼서 고맙고 그래서 더 발달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영화, 드라마도 물론 좋지만 우선은 계속 공연, 연극, 뮤지컬 등 무대에 서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스스로에게도 연기란 것이 많은 도움이 되고 사람들이랑 부대끼는 것도 좋고요. 그래서 꾸준히 실력을 쌓으려고 합니다.

 

관객들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 저는 연기든 삶이든 본질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살다보면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질 것으로 생각하고 어떤 위치에서든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배우, 올바른 방향성을 지향하는 배우가 되고자 합니다.

관객분들이 저를 어떻게 보느냐는 전적으로 저한테 달렸다고 생각해요. 제가 배우로서 준비가 되면 내적·외적으로 저를 잘 봐주실 테니까요.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임하다보면 좋게 봐주시지 않을까, 반짝이는 스타보다는 ‘한 배우’로서 비춰졌으면 좋겠다는 게 가장 큰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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